[작가노트]
작업하는 화지는 나의 감정을 비워내는 공간이자, 내가 몰입하는 시간은 새로운 감정과 표현으로 채워나가는 순간이다.
완벽히 소화되지 않은 감정이 내 안에서 끓어오르거나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작업을 통해 이러한 감정들을 비우고 그림 속으로 불러들인다.
그럴때 그림 속 인물들은 감정들을 수용하고 표현함에 있어 내게 안전한 매체가 되어준다.
나의 감정들이 그림 속으로 전환되면서, 나의 울림들은 그림 속 색과 면적의 감정적 울림으로 이어진다.그것은 첫 순간부터 작업의 끝까지 나를 휘감고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는 갈등, 희망과 불안함을 그림 속 인물들의 눈빛과 표정으로 풀어낸다.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과 자세는 내 감정들의 파장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나에게 지극히 개인적 이면서도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다.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나의 감정들이 그림으로 전환되면서 나의 내면을 다양한 색과 감정으로 채우게 된다. 비움과 채움의 과정이다.
작업에서 밝은 색을 쓴다고 해서 기쁜 감정을 담아내는 것도 아니고 어두운 색이라고 해서 그 반대편에 있는것도 아니다.
내 안에 다양한 감정들이 있듯 캔버스 위에 다양한 색상, 길이와 면적 그리고 리듬감을 이용해 그것들을 표현한다.
그러다보면 각기 다른 감정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표현될 때 스스로 내면의 복잡한 생각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 생각들이 겹쳐지고 충돌하면서, 내 감정들을 더 깊이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인지한 모든 감정들이 내 안에서 소화되거나 온전히 비워지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상쇄시키는 시간을 갖게된다.
작업에서 내가 드러내는 감정들은 나의 내면에서 발산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림 속 인물들은 이러한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표현함으로써 나의 감정들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내 작업은 이해했거나 이해해야 할 내 감정들이다.